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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쉼표 - 문장에서 나를 비춰보다

버려진 것들과 함께 사는 사람, 그를 철학자라 부른다

아침 바다 2025. 6. 3. 17:38

 

물건이 버려지는 곳에서 사람을 다시 보는 철학자.
도심 속 아파트에서 오리를 기르며, 골짜기 은곡재에서 밭을 일구는 사람.
『행복한 철학자』는 바로 그런 ‘몽상가’와 함께 사는 일상의 이야기다.


아파트에 오리가 살아도 되는 이유

『행복한 철학자』를 펼치면 처음엔 웃음이 난다.
풍차 앞에 서 있는 돈키호테처럼, 그는 현실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일을 진지하게 추진한다.
아파트 베란다에 오리를 들이고, 버려진 물건을 주워다가 다시 쓴다.
그가 이런 ‘쓸데없는 짓’을 반복할수록, 나는 이상하게도 따뜻해졌다.

그의 행동은 효율과 생산성만을 좇는 세상에서 잊힌 감정을 되살린다.
쓸모 없어진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
기꺼이 함께 늙어가겠다는 삶의 태도.
책을 덮고 나면, 오히려 내가 더 비현실적인 사람은 아니었을까 되묻게 된다.


철학자는 왜 항상 쓸쓸한가?

이야기 속 ‘철학자’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작가 우애령이 그리는 그는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크산티페’다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 속에서 완성된다.

자궁형 인간, 농부, 몽상가.
그 어떤 말로도 다 담기지 않는 철학자의 본질은
“버려진 것들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

이 책의 가장 따뜻한 지점은,
그의 삶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이다.
때론 답답하고, 때론 웃기고,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사람.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을 이 책은 자꾸 건드린다.


책을 읽다 문득, 내 곁의 철학자를 떠올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 아버지의 낡은 수첩을 떠올렸다.
그 안에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시 구절, 라디오에서 적은 전화번호,
그리고 한때 같이 일하던 동료의 이름이 남겨져 있었다.

쓸모없다고 치워버리기엔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너무나 선명했다.
『행복한 철학자』는 바로 그런 기억과 사람을 되살리는 책이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 이렇게 깊을 수 있을까?

개정증보판은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선다.
『펀자이씨툰』 만화 에피소드, 철학자의 편지, 그리고 엄유진 작가의 서정적인 먹그림이 더해졌다.
특히 후속작 『오리와 철학자』는 감정의 결을 한층 더 부드럽게 채색한다.

이야기는 여전히 소소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오히려 더 큰 사색과 질문을 던진다.
“상담과 철학의 차이가 뭐예요?”라는 질문처럼.
그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간다.


이 책은 누구에게 필요한가?

  • 자꾸 버티기만 하는 나에게
  •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고 싶은 저녁에
  • 도시에 지친 마음을 가만히 안아주고 싶을 때

『행복한 철학자』는 삶이란 단어에 ‘사랑’을 붙여주는 책이다.


이제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 곁의 철학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 도서 정보

  • 책 제목: 『행복한 철학자』
  • 저자: 우애령
  • 그림: 엄유진
  • 출판: 사계절
  • 추천 대상: 따뜻한 일상과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모든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