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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 책과 바람
산티아고 순례길 3일차 - 수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 도시와 나 사이의 거리 본문
산티아고 순례길 3일차
수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 도시와 나 사이의 거리
아침, 걱정 반 기대 반
새벽 공기가 조금은 서늘했다.
발의 물집이 어제보다 덜 아팠고, 통증도 견딜 만했다.
어쩌면 몸이 이 길에 적응하고 있는 걸까…
조금씩 익숙해지는 고단함이 묘하게 반가웠다.
아르가 강을 따라 수비리를 빠져나왔다.
햇살은 여전히 부드럽고, 강물엔 아침빛이 반짝였다.
풀숲에 핀 작은 꽃들과 바스락거리는 낙엽 사이로
새들의 노랫소리가 이어졌다.
순례길의 아침은 언제나 조용하지만 풍성했다.
오래된 교회, 짧은 침묵
**라라소아냐(Larrasoaña)**라는 마을에 들어섰을 때
종소리도 없이 문이 열려 있던 작은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13세기에 지어진 산티아고 교회.
낡은 나무 벤치에 앉아,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도는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안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쩌면 걷는다는 것도
이런 조용한 순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웃음소리와 함께 걷는 길
중간에 만난 호주인 네 명의 친구들.
웃음소리가 크고, 농담은 끊이질 않았다.
그들 사이에 자연스레 섞여 걷게 되었다.
“우리는 이 길을 웃으면서 걷는 게 목표야.”
카메라를 든 데이빗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진작가인 그는
걸으며 보는 풍경보다
걸으며 만나는 표정을 더 많이 담는다고 했다.
그들의 발걸음과 유쾌한 농담은
오전 내내 나의 피로를 잊게 해줬다.
트리니다드 데 아레, 그리고 따뜻한 점심
트리니다드 데 아레(Trinidad de Arre).
고요한 중세 마을, 작은 바실리카와 다리가 반겨주었다.
마을 식당에서 ‘메누 델 디아’를 주문했다.
미가스라는 빵 부스러기 요리가 처음엔 낯설었지만
짭조름하고 구수한 맛이 오히려 익숙했다.
와인 한 잔과 샐러드,
창밖으로 보이는 돌다리를 배경 삼아 천천히 음식을 즐겼다.
도시가 가까워질수록
점심 이후의 길은 전과 달랐다.
점점 주택가와 공업 지대가 모습을 드러냈고
자연의 온기가 서서히 콘크리트로 바뀌었다.
그래도 길을 잃진 않았다.
노란 화살표와 조개껍질 표시가
꾸준히 나를 안내해주었다.
도시는 멀어 보였지만
조금씩 내 걸음 아래로 다가오고 있었다.
팜플로나의 성벽을 지나
오후 3시,
마침내 팜플로나의 성벽 앞에 섰다.
16세기 군사 요새였던 이 성벽은
시간을 단단히 붙잡은 듯한 기세로 나를 맞았다.
‘푸에르타 데 프란시아’를 지나 구시가지로 들어섰다.
돌길과 붉은 지붕, 골목마다 새겨진 오래된 이야기들.
바로 이 도시의 얼굴이었다.
대성당, 광장, 그리고 한 잔의 커피
먼저 찾은 곳은 산타 마리아 대성당.
고딕 양식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퍼뜨렸다.
그 아래,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길 위에서 만난 이런 고요함은
매번 새롭게 마음을 건드렸다.
플라자 델 카스티요,
팜플로나의 중심 광장.
카페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관광객도, 일상도, 축제도 없는
담백한 도시의 오후였다.
타파스 바에서 만난 프랑스인 미셸
저녁은 타파스 바 투어.
핀초스, 토르티야 데 파타타,
카라멜리자도스,
조금씩 다른 맛을 탐험하듯 접시에 담았다.
프랑스에서 온 미셸과 우연히 함께하게 됐다.
정년퇴직 후 이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다.
“회사에서 40년.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의 말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나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기 위해 걷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중세의 밤을 거닐다
저녁을 마친 후,
팜플로나의 밤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성당의 조명, 골목길의 그림자,
중세의 시간이 되살아나는 듯한 순간이었다.
이 도시의 낮은 활기찼고
밤은 조용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 사이로
내일을 준비하는 마음도 따라 걸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알베르게로 돌아와
내일의 경로를 다시 확인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약 24km.
그 사이엔 **알토 델 페르돈(용서의 고개)**가 있다.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풍경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면
그 오르막도, 그리 멀게만 느껴지진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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