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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 책과 바람
산티아고 순례길 5일차 -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텔라까지, 포도밭과 고요의 길을 지나 본문
산티아고 순례길 5일차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텔라까지, 포도밭과 고요의 길을 지나
여명의 다리 위에서
아침 일찍, 마을이 아직 잠든 시간에 숙소를 나섰다.
푸엔테 라 레이나.
‘여왕의 다리’라는 이름처럼,
돌로 된 아치 다리 위에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었다.
잠시 멈춰 서서, 다리 아래로 흐르는 아르가 강을 내려다보았다.
물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순간.
마치 시간도 이 다리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포도밭 사이로 이어진 길
마을을 벗어나자 넓은 포도밭이 펼쳐졌다.
줄지어 뻗은 포도나무 사이로 흙길이 이어졌고
스페인 북부의 아침 공기는 청량하게 폐부를 적셨다.
이 지역은 나바라 와인의 산지라고 했다.
포도밭 사이로 걷는 동안,
뿌리 깊은 전통과 땀의 흔적이 이 길 위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놀로스에서의 짧은 만남
마놀로스(Mañeru).
좁은 돌길, 오래된 석조 건물,
광장 분수에서 물통을 채우며 짧은 휴식을 취했다.
그곳에서 만난 독일인 안드레아스.
“10년 전에도 이 길을 걸었어요.
많이 바뀌었지만, 그 본질은 여전하죠.”
그의 말처럼, 길은 달라져도 길 위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시러우키, 로마 시대를 걷다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시러우키(Cirauqui)**에 도착했다.
언덕 위에 자리한 이 중세 마을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붉은 기와지붕들이 이어져 있었다.
마을을 통과하다가
로마 시대의 석조 도로 유적을 발견했다.
2천 년 전, 로마의 병사들이 걷던 길.
이제 그 길 위를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리에구에서의 점심
점심은 **리에구(Lorca)**의 작은 식당에서.
보카디요 데 토르티야와 시원한 맥주.
그 단순한 한 끼가
오전의 피로를 사르르 녹여주었다.
식사 후엔 발 상태를 확인했다.
물집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큰 문제 없이 잘 버티고 있었다.
하루하루 내 발도, 내 마음도
조금씩 순례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들판의 열기, 느린 걸음
**비야투에르타(Villatuerta)**로 가는 길은
드넓은 들판 사이로 이어졌다.
오후의 햇살은 강했고, 그늘 없는 길 위를 걷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병을 자주 들어 입을 축이며
모자의 그림자 아래로 얼굴을 숨겼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 시간이
어쩌면 오늘 가장 귀한 순간이었다.
에스텔라, 중세가 살아 있는 도시
늦은 오후, 마침내 **에스텔라(Estella)**에 닿았다.
‘나바라의 톨레도’라 불리는 이 도시엔
시간이 고요히 머물러 있었다.
도시 초입의 푸엔테 로마노,
11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다리를 건너며
또 하나의 시간을 지나왔다고 느꼈다.
알베르게 산 미겔, 그리고 여유
오늘의 숙소는 알베르게 산 미겔.
오래된 수도원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돌벽과 아치형 창문이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이 도시를 조금 더 느껴보기로 했다.
돌길과 회랑, 그리고 오래된 성소
구시가지를 천천히 걸었다.
돌이 깔린 좁은 길,
서로 등을 맞댄 듯 이어진 건물들.
**산 페드로 데 라 루아 교회(Iglesia de San Pedro de la Rúa)**에 들렀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정문 회랑을 걷는 동안,
천년 가까운 세월이 내 발 아래로 흘러가는 듯했다.
나바라의 저녁, 가족의 온기
저녁은 산티아고 광장(Plaza de Santiago) 근처 레스토랑에서.
**포차(고기와 채소 스튜)**와
피킬로(속을 채운 작은 고추 요리).
현지 와인 한 잔이 더해져,
오늘 하루의 고단함이 스르르 녹았다.
식사 중 만난 프랑스 가족.
부모와 두 자녀가 함께 걷는 순례길.
“아이들이 처음엔 불평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잘 걷고 있어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가족과 함께 걷는 이 길이
이들에게도 오래 기억될 이야기 한 조각이 되겠구나.
에스텔라의 밤, 광장 벤치에서
식사 후, 다시 산책을 나섰다.
도시 곳곳에 조명이 켜졌고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퍼졌다.
산티아고 광장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종소리가 은은하게 멀리서 들려왔다.
다섯 번째 밤
벌써 5일째다.
처음 생장피에르포르를 떠날 때의 막막함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매일 걷고, 매일 자고,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떠나보낸다.
이 단순한 리듬 속에서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일을 준비하며
내일은 **로스 아르코스(Los Arcos)**까지, 약 21km.
지도를 보니 중간에 마을이 거의 없었다.
충분한 물과 간식을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가방을 다시 정돈했다.
잠자리에 들며 생각했다.
이 길은,
하루만큼의 거리보다
하루만큼의 마음을 걷는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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