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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산티아고 순례기 - 길 위에서 다시 만난 나 (28)
햇살과 책과 바람

밤새 비가 왔다새벽 5시.창밖에 빗소리가 들렸다.살짝 열어본 창문 너머로지붕 위를 또르르 구르는 물방울들.비 오는 날의 길은 더 조심해야 하지만이상하게 마음은 잔잔했다.크루스 데 페로에서 돌을 내려놓은 후내 안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조금씩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고요한 알베르게에서 짐을 챙기고,비옷을 꺼내 입었다.오늘은비 속을 걷는 하루가 될 것 같다.길은 내려가고, 물은 흘렀다엘 아세보를 떠난 길은곧바로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졌다.길가엔 젖은 돌멩이들이발을 잡아끈다.스틱에 힘을 실으며한 걸음 한 걸음,마치 명상하듯 조심스럽게 내려갔다.중간중간작은 물줄기가 길 위로 흐르고 있었다.내려가는 물을 따라 걷는 기분.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천천히 산을 내려왔다.리에고 데 암브로스(Riego de Ambrós), 잠..

새벽, 고요함 속의 각오라바날의 새벽은바람 소리조차 경건하게 들리는 아침이었다.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찬기,몸은 조금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오늘은그 오래된 철십자가,크루스 데 페로까지 올라가야 한다.아무 말 없이 침낭을 정리하고손바닥만 한 돌 하나를배낭 속에 조심스럽게 넣었다.서울을 떠나기 전,뒷마당에서 집어 든 작은 돌.그 위에 내가 떠나보내고 싶은감정과 이름들을 새겨왔다.이제,그것을 내려놓으러 가는 길이다.발 아래에 쌓인 이야기들출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폰세바돈(Foncebadón)이 보였다.고도 1,400m를 넘는 이 마을은돌담과 낡은 지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한때 버려졌던 곳이지만,순례자들 덕분에 다시 숨을 쉬게 되었다고 한다.조용한 마을을 지나점점 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했다.숨을 고르고 또..

늦잠이라는 선물순례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알람 없이 잠들었다.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올 때까지,이불 속 따뜻한 공기 속에 몸을 묻고 있었다.걷지 않는 하루는몸보다 마음이 먼저 느낀다.발바닥은 여전히 단단했지만,속으로는 조용한 쉼을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커피 한 잔, 시작의 온기성당 근처의 작은 카페.스페인 노인의 손에서 갓 구워진 크루아상이 나왔고,뜨거운 ‘카페 콘 레체’ 한 잔이 손을 덥혀주었다.창밖을 바라보며 오래 앉아 있었다.오고 가는 사람들,순례자 배지를 달고 있는 이들,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바삐 걷는 현지인들.그 모두가,이 도시에 각자의 ‘길’을 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대성당의 빛 안에서레온 대성당(Catedral de León).고딕 양식의 정점.하지만 그 외관보다도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문을 열자, 바람아침 6시 30분.알베르게 창을 여니, 바람이 먼저 얼굴을 스쳤다.차갑지만 맑은 공기.새벽을 깨우는 교회의 종소리가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왔다.조용히 짐을 챙기고아스토르가를 나섰다.등 뒤로 천천히 사라지는 붉은 지붕들.조금 아쉽기도 했지만,오늘은 새로운 경사가 기다리고 있었다.순례자의 철도, 카사블랑카아스토르가를 벗어나면곧바로 카사블랑카(Casablanca)와 발라즈카르도(Balazote) 같은작은 마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길은 평탄하다가도,조용히 경사가 시작된다.길 옆으로는 철로가 이어지고간간이 기차가 순례길 옆을 스쳐지나간다.그 길을 바라보며 걷는 동안문득 생각이 들었다.인생도 어쩌면평행선 위를 함께 걷는 순례인지도.순례자 하나, 기차 하나.서로 닿을 수 없지만,언제나 가까이에 존재하는 ..

느린 출발, 낯선 고요아침 공기가 유난히 차가웠다.비야다랑카 델 파라마오의 작은 알베르게를 나서는데하늘은 흐릿했고, 주변은 적막했다.순례자 몇 명이 앞서 걷고 있었지만,오늘은 어쩐지그 뒤를 따라 걷기보단혼자만의 속도로 걸어야 할 것 같았다.하늘이 흐려도걷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다.햇빛은 약했고,몸은 어제보다 가벼웠다.60대의 체력으로는 이런 날씨가 참 고맙다.작은 마을들, 길 위의 숨결오늘 지나온 마을들,산타 카테리나 데 솜포르(Santa Catalina de Somoza)와에레라(Herrera)는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안고 있었다.마을 어귀에서 만난 노부부는줄무늬 앞치마를 두르고작은 텃밭을 일구고 있었다.우리를 보며 인사 대신조용히 손을 흔들어주었다.그 동작 하나에 따뜻함이 묻어났다.길가에 핀 노란 ..

도시를 벗어난 아침레온의 거리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순례자의 발걸음은늘 도시의 리듬보다 한 박자 빠르다.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고가벼운 빵으로 아침을 대신한 뒤,조용히 도시의 외곽으로 향했다.차들이 지나가고,출근길 현지인들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빠르게 걷는다.그 틈을 지나나는 또 하나의 하루로 걸어 들어갔다.아스팔트에서 다시 흙으로레온을 빠져나오는 길은한동안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였다.자동차 소음이 여전히 따라붙고,도심의 흔적이 걷는 속도를 방해한다.하지만 문득,길가의 잡초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 시선이 머물고,풀잎에 맺힌 이슬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순간,다시 ‘길 위’라는 사실이 마음속 깊이 내려앉는다.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ín del Camino)까지길은 평탄했다.걷기에 더없..

아침, 그 조용한 출발밤새 바람이 불었는지,창문 너머 나뭇가지가 서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새벽 공기가 뺨을 스쳤고,그 차가움이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이제는 아침을 준비하는 순례자의 손이 익숙해졌다.물통을 채우고,트레킹화를 조여 매며,잠든 마을을 조용히 떠나는 이 짧은 의식.오늘은 유난히 발걸음이 가벼웠다.가깝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도시로 향하는 길목초반 몇 킬로는 평탄했다.길은 좁은 시골 도로를 따라 이어졌고,좌우로는 마른 풀밭과간간이 보이는 황소 목장의 담장이 스쳐갔다.도시가 가까워질수록풍경이 조금씩 변해갔다.고요하던 길에 차 소리가 섞이고,순례자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아졌다.삶의 리듬이 달라지는 순간들.그 낯선 속도가조금은 어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들숨과 날숨 사이, 되묻는 길걷다 보니 ..

바람이 먼저 깨어나는 아침새벽 공기가 다소 차가웠다.하지만 그것마저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알베르게 밖으로 나서자어제 내린 이슬이 자갈길 위에 맺혀 있었고,먼 동쪽 하늘엔 여명이 살며시 퍼지고 있었다.고요하게 시작한 하루,마치 누군가의 속삭임처럼바람이 먼저 길을 열었다.같은 길, 다른 마음오늘도 메세타.똑같아 보이는 흙길,좌우로 펼쳐진 풀밭,멀리 지평선을 따라 걷는 순례자들.하지만 이상하게도어제와는 다른 길처럼 느껴졌다.무엇이 달라졌을까.길이 아니라,아마 내 마음이 조용히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누군가를 떠올리는 시간걷는 동안가끔은 누군가가 그리워졌다.부모님, 친구,이 길에 함께 오지 못한 사람들.하지만 그리움조차도이 순례길 위에선 급하지 않다.천천히 다가오고,천천히 사라진다.‘보고 싶다’는 감정이마음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