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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 책과 바람
산티아고순례길 31일차 | 숲이 나를 감쌌다–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 약 21km 본문
산티아고순례길 31일차 | 숲이 나를 감쌌다–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 약 21km
아침 바다 2025. 7. 20. 08:40아침, 물안개 속을 걷다
오 세브레이로의 새벽.
마을은 다시 안개에 잠겨 있었다.
밤새 내린 이슬이 돌길을 적셨고
짧은 숨이 입김처럼 흩어졌다.
조용히 알베르게를 나서는데
성당 지붕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오랜 시간, 이 작은 산 위에서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의 새벽을 봐왔을까.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었고,
나는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갔다.
갈리시아의 진짜 얼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 물소리
길은 전날과 전혀 다른 풍경으로 이어졌다.
바닥엔 젖은 낙엽이 깔려 있었고
오른쪽 귀 옆에서는
계속해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와 나무 사이,
햇살이 가늘게 비집고 들어왔고
촉촉한 이끼 위로 작은 풀잎들이 피어났다.
도시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숨결 같은 고요함’.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이상한 평온함.
길이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립트레이(Liñares), 고요한 쉼
중간에 만난 작은 마을 립트레이.
집은 몇 채뿐이었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마을은 조용했다.
길가 벤치에 앉아
말없이 물을 마셨다.
가방에 넣어온 말린 무화과 하나를 꺼내
천천히 씹었다.
그 순간,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왔다.
어디선가 종소리처럼 들리던
순례자의 발자국 소리도 멈추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단 하나의 오후.
계속되는 내리막, 무릎과의 대화
산길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비에 젖은 흙길,
자갈이 섞인 경사.
내려가는 걸음마다
무릎에 작은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통증이 ‘불편’이 아닌 ‘대화’처럼 다가왔다.
"지금 무게를 조금 덜어줄래?"
"한 박자 쉬어갈까?"
몸과 마음이 서로 주고받는 언어.
60대의 순례는
이런 섬세한 감각 위에서 이루어진다.
트리아카스텔라, 깊은 숲의 마을
오후 2시.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에 도착했다.
갈리시아어로 ‘세 개의 성’이라는 뜻의 이 마을은
숲속에 숨어 있듯 조용하고 아늑했다.
작은 광장 옆 알베르게에서 체크인.
뜨거운 샤워 후,
창문을 열었더니
밖엔 아직도 비슷한 안개가 흩날리고 있었다.
발을 올리고
따뜻한 수건을 덮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는
숲이 나를 감싸고,
바람이 내 어깨를 토닥여준 날이었다.
저녁, 조금 다른 리듬
트리아카스텔라의 작은 식당.
오늘의 메뉴는
수제 수프와 부드러운 돼지고기 찜.
작은 잔에 따라낸
갈리시아 와인을 마시며
옆자리의 순례자들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 길 위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그 질문에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모두가
오늘 하루를 천천히 되새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나는 걷지 않았다
숲이 대신 걸었다
나는 분명 걸었지만
정말 걷고 있던 건
그 길, 그 숲, 그 바람이었다.
나는 그저
그 안에서 조용히,
흔들림 없이 머무르고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