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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기 - 길 위에서 다시 만난 나

서울에서 생장피에르포르까지 - 산티아고 순례길, 그 시작점에 선 밤

by 아침 바다 202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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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

 

 

“이제 나를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생의 전환점에서 길 위를 떠올리다

인천에서 파리, 바이욘을 지나 생장피에르포르까지, 나를 향해 걷는 시작과 준비의 기록

💡 핵심 한 줄 요약|은퇴 뒤 맞이한 고요 속에서, 배낭을 가볍게 하고 마음을 비우며 산티아고 순례길로 첫발을 내디뎠어요.

📋 목차


1. 인생의 전환점에서 길을 떠올리다

“이제 나를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은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

30년을 일하고, 마침표를 찍은 어느 날.

모든 시계가 멈춘 듯 고요했지만, 마음 한편엔 묘한 떨림이 있었다.

그때 떠오른 게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프랑스를 출발해 스페인을 가로질러 대서양 끝까지 이어지는 800km.

이 길이라면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아주 천천히, 아주 깊이.

NOTE|‘왜 지금, 왜 길인가’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남겨두면 이후 여정의 기록이 더 선명해져요.

2. 준비의 시간, 걷기보다 내려놓기

처음엔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없어선 안 될 것 같았다.

15kg이 넘던 배낭을 메고 한참을 걸었다.

숨이 찼다. 어깨가 무거웠다.

그 무게가 물건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필요한 것들을 빼고 나니 10kg이 조금 넘었다.

가볍게, 최소한으로, 그래야 오래 걸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짐만이 아니라, 마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INFO|배낭은 체중의 10% 이내가 이상적이며, 레이어링 중심의 의복 구성과 ‘만약’을 줄이는 미니멀 키트가 유리해요.

3. 인천에서 파리까지, 현실이 된 출발

새벽, 인천공항.

아내가 함께 배웅을 나왔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빛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잘 다녀올게. 40일 후엔 돌아올게.”

웃으며 말했지만, 목이 조금 메었다.

대한항공 KE901편에 올라타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앱을 켜고 순례길 지도를 다시 살펴봤다.

피레네를 넘는 첫날이 가장 힘들다고 했는데…

그래도 준비는 충분히 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CAUTION|장거리 비행 후 당일 장거리 이동은 피로가 누적돼요. 첫날 일정은 여유 있게 조정하는 편이 안전해요.

4. 파리에서의 짧은 하루

현지 시간으로 오후 4시 30분, 파리 샤를 드골 공항 도착.

입국심사를 마치고 RER B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몽파르나스역 근처, 미리 예약한 작은 호텔이 오늘 밤의 숙소였다.

방은 작지만 조용했고, 무엇보다 역에서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저녁엔 근처 카페에서 가볍게 식사를 했다.

혼자지만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그 적막함이 이 여행의 첫 배경음 같았다.

NOTE|RER·메트로 이동 중 소매치기 예방을 위해 여권·지갑은 RFID 파우치에 보관하고, 휴대폰은 몸쪽 주머니에 넣어 주세요.

5.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튿날 새벽.

TGV를 타고 바이욘(Bayonne)까지 향했다.

프랑스 시골 풍경이 창밖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초록빛 들판, 포도밭, 소박한 농가…

도시의 시간과는 다른 결이 있는 장면들.

창밖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비워졌다.

바이욘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 반.

로컬 기차로 갈아타기 전까지 3시간의 공백.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Camino Pilgrim’ 앱으로 내일의 날씨와 경로를 확인했다.

25.1km. 예상 소요 시간 8시간.

그 숫자들이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INFO|바이욘–생장 로컬열차는 성수기 혼잡해요. 예매 캡처를 오프라인 보관하고, 플랫폼 변경 안내를 수시로 확인하세요.

6. 생장피에르포르, 진짜 여정이 시작되는 곳

작은 기차에 몸을 싣고, 생장피에르포르로 향했다.

객차는 단 두 칸.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각자의 언어, 각자의 표정.

하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한 길 위에 있었다.

푸른 언덕, 붉은 지붕, 양떼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풍경 속을 1시간 반쯤 달려 도착.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마음이 조용히 벅차올랐다.

좁은 돌길, 중세 성벽, 붉은 벽돌 건물.

마을은 생각보다 더 작고, 훨씬 아름다웠다.

7. 순례자 사무소에서 첫 도장을

지도 앱을 따라 도착한 순례자 사무소 Bureau des Pèlerins.

사무소는 북적였고, 자원봉사자가 밝은 미소로 나를 맞았다.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에 첫 스탬프를 받았다.

조개 껍질도 하나 사서 배낭에 달았다.

진짜 순례자가 된 기분이었다.

“피레네는 생각보다 험해요. 내일은 맑지만, 방한복은 꼭 챙기세요.”

자원봉사자의 조언이 머릿속에 남았다.

고도 차이가 큰 구간이지만, 천천히 걸으면 괜찮을 거라고.

CAUTION|피레네 구간은 기상 급변 가능성이 커요. 방한·방풍 레이어와 충분한 수분, 고열량 간식을 필수로 준비하세요.

8. 알베르게에서 만난 첫 인연들

예약해둔 ‘알베르게 마리스텔라’에 도착한 건 오후 5시쯤.

12인실 도미토리. 침대는 이층이었고, 조용히 짐을 풀었다.

순례자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독일에서 온 한스와 마그다 부부.

브라질의 루시아, 미국 대학생 마이크, 스페인에서 온 하비에르.

이름도, 언어도, 나이도 다르지만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점에선 다 같았다.

INFO|알베르게 에티켓: 소등은 보통 22시, 헤드랜턴과 귀마개·슬리퍼·빠른 건조 빨래줄을 준비하면 편해요.

9. 첫 식사, 첫 고백

알베르게에서 준비한 순례자 식사.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바스크 지방의 요리를 나눴다.

피파라드, 아슈아, 그리고 가토 바스크.

와인 한 잔이 피로를 녹였다.

루시아가 내게 물었다.

“왜 이 길을 걷기로 했어요?”

잠시 생각했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30년을 일했어요. 이제는 나 자신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어요.

이 길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그게 궁금했어요.”

한스가 잔을 들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건배 소리와 함께, 마음도 조금씩 열렸다.

10. 밤이 내린 마을, 떠오른 실루엣

식사 후 마을을 걷는다.

가로등 불빛 아래 돌길이 반짝인다.

샤를르 드 골 광장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이 많고, 바람이 맑다.

멀리 피레네 산맥의 능선이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난다.

내일, 저 산을 넘어야 한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용했다.

11. 그 밤, 처음으로 눈을 감으며

알베르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누군가는 기도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일기를 쓴다.

창밖 달빛이 산맥을 비추고 있다.

“이제 시작이구나.”

그 생각과 함께, 긴 숨을 내쉬고

아주 깊은 잠에 들었다.

12. 🔍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 팁

주요 앱: Camino Pilgrim, Buen Camino (오프라인 지도 지원)

배낭 무게는 10kg 이하로 줄이는 게 좋음

생장피에르포르 도착 후, 순례자 사무소에서 크레덴시알 & 조개 껍질 수령 필수

피레네 구간은 난이도가 높으므로 방한복 & 충분한 물 필수.

EXPERT|첫 3일은 속도를 줄이고, 물집 예방을 위해 양말 이중 레이어·발바닥 테이핑을 고려하세요. 고도 변화가 큰 날은 전해질 보충이 도움이 돼요.

1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① 순례자|파울로 코엘료

산티아고의 길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영적 탐색기예요. 순례의 상징과 내면의 물음을 깊게 따라가게 해줘요.

②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프레데리크 그로

걷기를 철학적 사유의 행위로 바라보는 고전이에요. 길 위의 사색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③ 걷기의 세계|셰인 오마라

‘In Praise of Walking’의 한국어 번역본으로, 걷기의 뇌과학·생리학적 효능을 쉽고 명료하게 설명해요.

14. 내부 콘텐츠 글 추천

산티아고 순례길 시리즈 모아보기
일자별 후기, 구간별 팁, 숙소·식사·예산 정보를 한 곳에 모았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따라 읽으면 전체 루트와 난이도가 자연스럽게 그려져요.

순례길 준비 체크리스트·장비 가이드
배낭 무게 최적화, 신발·양말·스틱 선택, 물집·비상약 준비까지 실전 기준으로 정리했어요.
체크리스트로 출력해 바로 체크하며 준비할 수 있어요.

요약 7문장

1) 은퇴 뒤 고요 속에서 ‘이제 나를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선택했어요.

2) 15kg 배낭을 10kg대로 줄이며, 물건과 함께 마음의 불필요함도 내려놓았어요.

3) 인천공항에서 파리로, 파리의 낯섦을 배경음처럼 받아들이며 남쪽으로 이동했어요.

4) TGV로 바이욘을 거쳐 생장피에르포르에 도착하는 여정에서, 측정 가능한 거리와 시간이 주는 안심을 배웠어요.

5) 순례자 사무소에서 첫 도장을 찍고 조개껍질을 달며 ‘길의 인간’이 되는 의식을 치렀어요.

6) 알베르게 식탁에서 “왜 이 길을 걷는가”라는 같은 질문으로 서로의 이유가 연결되었어요.

7) 피레네의 실루엣 아래 잠든 밤, 다음 장을 여는 출발선에 선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확인했어요.

 

생장피에르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