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7일차 - 로스 아르코스에서 로그로뇨까지, 물 한 모금으로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7일차
로스 아르코스에서 로그로뇨까지, 발끝에 맺힌 고요, 잔에 담긴 위로
새벽 어둠 속 첫 발걸음
고요한 어둠 속, 나 혼자 깨어 있던 아침.
새벽 5시 반, 헤드랜턴 불빛 아래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들판 위로 내 발걸음 소리만 또각또각 울렸다.
하늘이 점점 푸르게 물들며, 불안함보다 평온함이 마음을 채워갔다.
토레스 델 리오, 시간의 주름을 따라
카스티야 문을 지나, 오드론 강을 건너고
언덕과 농로를 반복하던 발걸음은 어느새 (Sansol)과 (Torres del Río)를 지나고 있었다.
팔각형의 신비한 교회, ‘성 성묘 교회(Iglesia del Santo Sepulcro)’
돔 천장 아래 울려 퍼지던 작은 노래 한 자락…
그 공간은 중세의 숨결을 머금은 작은 성소 같았다.
롤러코스터 같은 오르막, 그리고 숨
(El Poyo)까지 이어진 오르막.
진심으로 숨이 턱까지 차올랐던 구간이었다.
그래도 정상에 다다랐을 때, 탁 트인 풍경과 고요한 성당이 내게 잠시 숨을 돌릴 틈을 내주었다.
바로 아래 코르나바 계곡은 다시금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요구했다.
비아나, 전사의 무덤과 점심의 위로
오후 햇살 아래 도착한 (Viana).
오래된 성벽과 고딕 교회, 그리고 체사레 보르자의 무덤.
그 이름은 교과서보다도 생생하게 발밑에 남아 있었다.
광장에서 마신 시원한 가스파초, 그리고 고소한 양고기 냄새.
오늘의 첫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닌 회복이었다.
라 리오하의 문턱, 그리고 무화과 할머니
그늘 하나 없는 들판.
물 한 모금, 모자 아래 그림자, 땀으로 젖은 셔츠.
나바라와 라 리오하의 경계를 지나며 만난 작은 간이상점.
그곳의 마리 할머니는 순례자들에게 무화과와 미소를 건넸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 펠리사의 자리를 지키며… 이 길에 여전히 사랑을 남기고 있었다.
에브로 강을 건너며, 일주일을 돌아보다
(로그로뇨)를 향해 걷던 마지막 구간.
뜨거운 햇살과 무거운 다리.
그러나 에브로 강 위 석교에서 바라본 반짝이는 물결은
일주일 동안의 시간들이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을 남겼는지 깨닫게 했다.
와인과 타파스, 그리고 민지
알베르게에서의 짧은 휴식 후
(칼레 로렌소) 거리로 향했다.
리오하 와인 한 잔, 버섯 타파스 한 입.
그 순간 서울에서 왔다는 한국인 민지를 만나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나눴다.
카미노에서의 인연은 때론 한 잔의 와인처럼 묵직하고 따뜻하다.
로그로뇨의 밤, 기타 소리와 석양
고요한 밤, 기타 선율이 교회 광장을 채우고
산티아고 교회와 대성당의 야경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기도 같았다.
벤치에 앉아 오늘의 길을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가슴속에 남는 이야기들.
오늘은 그저 그런 하루가 아니었다.
내일을 준비하며
발은 부풀어 있었고, 물집은 더 커졌다.
그러나 치료해준 자원봉사자의 손길과
민지에게 배운 조언 덕분에
나는 다시 내일을 향해 마음을 다잡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기 전,
‘오늘도 잘 걸었다’는 속삭임 하나가 가슴속을 채웠다.